화가의 삶을 알면 그림이 보인다!
예술과 대중 사이에는 아직도 단단한 벽이 있다. 그 벽을 부수기 위해 많은 예술가의 고뇌가 있었으나 정작 그 혜택을 받은 것은 대중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예술과 대중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바로 자신만이 예술을 이해한다고 믿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왜곡현상이다. 예술을 논할 때 우리는 흔히 ‘위대함’이나 ‘거장’이라는 단어부터 사용한다. ‘예술’이라는 말만 나오면 어쩐지 미술관에 당장 달려가 스탕달 신드롬이라도 느껴야 진정 예술을 아는 사람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림 제목을 술술 꿰차고 있어야 예술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지식을 섭렵한 사람만이 예술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림을 상품으로 보는 수집가처럼 냉철한 지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예술을 이해하는 보다 재미있고 진실한 방법은 없을까? 예술가의 삶은 그렇게 위대할까? 그들은 언제나 위대한 예술만을 위해 살았을까?
<화가>는 그런 물음에서 출발한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예술가 역시 생활인이었으며 일관된 정신의 소유자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똑같은 고민거리가 주어지더라도 인생이 제각각인 것처럼, 어느 날 어느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에 남다른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있다. 예술가는 그 깨달음을 발판으로 더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예술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 것일까? 작가는 ‘평범한 한 인간이 보편인과 똑같은 세속적 갈망과 그에 따른 구차한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어떻게 예술정신에 이르는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렇듯 이 책은 단순히 미술지식을 만화로 설명해놓은 학습서가 아니다. 오히려 설명을 거부한다. 오로지 작가가 직접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낀 감동을 전하는 한편의 드라마이기를 바란다. 작가는 ‘예술은 정신’이라고 강조하면서 예술가의 정신을 이해하는 것을 책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화가>를 기획한 4년 전부터 강모림은 이 시리즈를 단편 드라마처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독자는 <화가>시리즈 각권을 통해 화가의 삶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예술정신을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시리즈 전체가 모아지면 그들의 삶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부분으로서 마치 톱니바퀴처럼 한 시대의 흐름 속에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마네는 마네 삶의 주인공인 동시에 모네를 비롯한 다른 화가들의 삶에 다시 등장해 부분을 이룬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았던 감동적인 순간들이 각 권의 각 꼭지마다 부활해 그의 삶이 자신 만의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로써 <화가>는 학습이 아닌 감성의 고양을 위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며 독자는 책을 통해 단순히 교양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화가가 경험한 예술 정신까지도 체득하게 되는 독특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주제의 차별성과 함께 만화가 아니면 그만큼 효과를 증폭시킬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강모림 만의 독특한 그림체의 강점에 더해져 새로운 만화 예술로 탄생한 것이다. 이제 독자는 <화가>를 통해 예술과 대중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즐겁고 행복하게 뛰어 넘을 수 있을 것이다.
<화가>는 시리즈 각권마다 2인의 화가를 다루게 된다. 2인의 화가는 공통되거나 대조되는 캐릭터로서 이야기의 팽팽한 균형을 이룰 것이다. 두 사람의 삶이 시간 순으로 전개되며 전체의 한 부분인 동시에 부분을 위한 전체라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시리즈의 큰 의미를 갖게 된다. 이는 동시대의 화가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또 받는 과정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다. 각자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의 일부가 되는 이야기, 이것으로서 미술사의 중요한 연결 고리인 예술가들 사이의 영향과 그 결과를 가장 흥미롭게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독자는 시리즈 전체를 통해 화가의 정신 뿐 아니라 한 시대의 예술 정신까지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우리와 동떨어진 시공간을 살다 간 화가의 감정과 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이미 오래전부터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문자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화가>는 신선한 돌파구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