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잡설

역학은 비과학적인 미신일 뿐인가

사람들이 점을 치는 이유는 뭘까. 현실에 대한 불안과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처럼 사회는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지식수준은 높아졌으며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한 시대에도 불안을 달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점이라는 방식이 과연 유용할까.
역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곧이곧대로 믿기엔 과학적으로 설명할 근거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미신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불안을 이길 다른 대안이 별로 없다. 대안이 라면 신에 의지하는 종교 같은 것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역학을 시중 점술가들의 밥벌이 수단 정도로 폄하해 버리거나 편견과 선입견으로 미신이라 낙인찍어 버리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당대의 무수한 일류 인재들이 역학을 연구하여 일가를 이루었고 지금도 곳곳에서 수십 년 아니 평생을 바쳐 역학을 공부하고 있는 현실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역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미신이라느니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느니 하며 터부시하는 태도야말로 미신이자 전횡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학을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과학적 이치나 연원을 밝히지 않는 한 학문적 발전과 더 폭넓은 활용법을 찾기는 요원하다. 발전은 고사하고 역학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만 갖게 할 뿐이다. 겉으로는 미신이라고 취급하면서 자신에게 닥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몰래 점술에 의존하는 것 말이다.

남회근은 역경을 어떻게 설명하나

『역경잡설』은 역에 입문한 초학자들에게 『역경』과 『역경』을 둘러싼 기본 지식, 『역경』을 해설하기 위해 후대에 공자가 썼다고 알려진 「계사전」을 비롯해 『십익』 전반을 다루고 있다. 사실 초학자라 하지만 『역경』을 깊이 공부한 사람도 처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협소설 읽듯 빠져들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 옮긴이 말에서 나와 있듯 "진정으로 역을 깨달은 사람만이 이처럼 심오한 내용을 알기 쉽게, 그리고 분명하면서도 전혀 억지스럽지 않게 설명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다양한 연원을 가진 문화가 얼마나 지혜롭고 과학적이었는지를 짚어 내는 저자의 학식과 궁금한 것은 파고드는 탐구심을 보고 있으면 잡학 대사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 수 없다. 『역경잡설』은 남회근 저서 중 잡학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 주는 책이다. 50여 년 동안 저자를 옆에서 지켜보고 따랐던 장상덕 교수는 말한다. "그의 학문은 지극히 깊고 넓으면서 구체적 사실로써 표현된다. 그는 정말 역사상 극히 보기 드문 잡학(雜學) 대사이기도 하다. 참위학(讖緯學)이나 운명감정, 점술과 관상 등 제자백가에 대한 지식, 각 파의 무술에 정통하다. 그러므로 남선생은 정통 학문 이외에도 잡학을 깊이 알고 크게 성취한 분이다. 남선생은 매사를 배울 뿐 아니라 늙어갈수록 더욱 배우는 분이다."

_ 『역경』은 동양 문화의 뿌리다
『역경』은 동양 사상의 근본으로, 유가와 도가 및 일체 학문이 모두 『역경』으로부터 비롯되어 발전해 왔다. 저자는 제자백가의 학설도 모두 『역경』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의 독특한 관점이긴 하지만 『대학』의 사상은 건괘로부터, 『중용』의 사상도 곤괘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모든 사상의 뿌리가 되고 모든 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역경』은 한 시대의 산물이 아닐 것이라 본다. 『역경』이 지닌 과학성이 관찰의 결과이긴 하나 한 시대 인류 문화가 아니라 빙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문화가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한 어느 시대 그 법칙이 종합되고 나서 최후에 여덟 개의 간단한 기호(팔괘)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왜냐하면 『역경』의 법칙은 화학이든 물리든 인체의 작용이든 세상사든 어디에 적용시켜도 모두 통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나이 오십에 『역경』을 공부하기 시작해 심혈을 기울여 이십 여 년 익히고 나서 마침내 도를 얻었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역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장상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_ 『역경』의 인문적 해석만 부각된 게 문제였다
저자는 고대 문화의 결정체와 같은 『역경』을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오리무중으로 여기는 이유를 상과 수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역경』을 연구하는 데는 상수(象數)와 의리(義理)의 길이 있다. 우주만물에는 현상[象], 수(數), 이치[理]라는 세 가지 법칙이 있는데 만물의 법칙을 상과 수로 해석하는 것이 상수학이고 인문적 관점에 치중해 자연현상을 인간사에 적용한 것이 의리학이다. 말하자면 상수학은 자연과학이고 의리학은 인문학인 셈이다.
『역경』에 대한 의리적 관점에 치중한 것은 진대(晉代) 왕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왕필은 "뜻을 취하고 상을 잊는다"라는 기치 하에 상(象)을 없애 버릴 것을 주장했다. 그러다 송대 이후 『역경』 주해는 대부분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의리학 쪽으로 가 버렸다. 저자는 송대 주희가 주해한 『역경』은 해석에 문제가 있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러나 주희 주 『역경』은 명대 이후 공식 교과서처럼 받아들여졌으며, 명청 이래 부각된 공맹의 사상은 모두 주희의 사상으로 기울었다. 『역경』의 이치를 모두 사서오경의 사상으로 강론하게 되는 폐해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경』의 한 측면만 부각되고 상수적 측면이 사라져 생긴 문화적 피해는 수백 년 동안 심각했다.

_ 『역경』의 과학적 이치인 상수가 전해지지 않았다
『역경』이 유학자들의 전유물이 되어 오로지 이치만 중시하도록 왜곡된 데서 문제가 비롯되었다. 『역경』의 중요한 한 축인 상수적 측면은 학문적으로 발전할 길이 사라졌고 상수의 취지나 연원에 대한 이해 없이 방법적 측면만 발달해 시중의 술수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저자는 상수의 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역경』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역경』 관련 책에는 이 이치를 분명히 밝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저자는 『역경』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상수적 측면에 대해 주의하고 세밀히 탐구해 그 연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또 저자가 책을 쓴 동기이기도 하다.
『역경』의 상과 수를 배우려면 우선 괘의 이름, 괘 그리는 순서, 팔괘의 모양, 육십사괘 괘의 변화, 선천팔괘와 후천팔괘의 배치에서 차이, 팔궁괘의 변화, 육십사괘 방원도 등을 숙지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이 역학을 공부할 당시 이런 것들에 대한 이치 설명 없이 무조건 외우라고만 해 지겨웠던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런 저자의 경험이 이 강의를 이끌었다. 『역경잡설』에는 어느 책에서도 자세한 설명이 없는, 예를 들어 괘를 그릴 때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그려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 하는 취지를 설명한다. 후학들이 자기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자신이 터득한 것을 활용해 역을 문턱을 넘으라는 뜻이다.

_ 과학기술을 경시하는 사고방식도 『역경』을 잘못 이해하는 데 한몫했다
저자는 상수 방면이 발달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를 과학기술을 중시하지 않았던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에서 찾는다. 상수에는 수많은 과학적 철학적 이치가 담겨 있는데 고대의 정치사상이 과학의 발전을 선호하지 않아 상수가 점치는 쪽으로만 발달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고대에 과학기술을 경시하게 된 근본 이유를 과학기술이 발달해 물질이 풍요할수록 인간의 욕망만 증대될 것이고 그에 따라 사회 혼란이 야기된다고 보는 사상 때문이라고 했다.

_ 스스로 체득하도록 한 전통적인 학습법도 문제였다
여기에 더해 긴 세월을 투자해 어렵게 체득한 방법을 제자에게도 전하지 않는 전통적 교육법도 역의근본 원리 탐구라는 길에서 멀어지는 데 한몫 했다. 동양의 전통적 학습법은 스스로 노력해 문리를 깨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 지식 전수라든가 학문적 성과를 모아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사람들은 저마다 긴 세월을 투자해 자기만의 방식대로 이치를 터득해야만 했다. 이런 태도와 사고는 자칫 그 뜻을 조악하게 만들어 버리는 폐단이 있었다. 상수의 이치는 직접 부딪혀 하나하나 터득해 가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될뿐더러 까다롭고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많고 잘못 이해할 가능성도 농후하기 때문이다.

왜 잡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나

_ 상수와 의리를 융회 관통한다
『역경잡설』은 저자의 역학 연구 보고서다. 이 책에는 역의 과학적 이치와 인문적 측면을 다루어 "상수에 집착해 의리를 저버리는 것도 고인의 본래 의도에 어긋나며 상을 버리고 뜻을 얻는 것 역시 분명 『역경』의 '결정정미(潔靜精微)' 정신에 어긋난다"는 말 그대로 이치를 녹여냈다. 상수적 측면은 앞부분 약 삼분의 일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저자가 역학을 공부하면서 체득한 역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지식과 역학 연구에 필요한 온갖 노하우가 실려 있다. 괘는 무엇이고 누가 만들었는지부터, 역은 천지자연의 법칙에서 비롯되었고 『역경』이 오행과 천간 및 지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 역학에 포함된 이치를 세세히 밝히며 그 연원까지 탐구해 들어간다. 그다음은 『역경』의 건괘에서 수괘까지 괘사와 효사 등을 풀이한다. 비록 『역경』 육십사괘를 모두 설명하진 않지만 쉽고 명쾌하면서도 역의 심오한 뜻을 짚어 내는 남회근 식 『역경』 해석을 맛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흔히 공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십익』을 설명하고 비평도 덧붙인다. 그중 공자가 나이 오십에 『역경』을 연구하여 깨달은 역의 철학적 이치를 담은 총론 격인 「계사전」을 길게 서술해 앞에 나온 역의 상수적 측면과 균형을 맞춘다. 이후 단사, 상사, 「문언전」, 「서괘전」을 다루며 『역경』 이해의 참고서 격인 『십익』의 성격과 한계 및 그 내용을 설명한다.

_ 왜 잡설인가
책 이름 『역경잡설』은 원서 그대로를 따랐다. 역자 신원봉에 따르면 1998년 처음 책을 낼 때 '잡설(雜說)'이라는 우리말 어감과 뜻이 좋지 않아 고심했다고 한다. 잡설이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잡다하게 늘어놓는다거나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뜻풀이가 있기 때문이다. 원서명을 이렇게 붙인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으나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의미를 알 듯도 하다.
『역경잡설』에는 오늘날 역학과 뭉뚱그려 받아들여지고 있기는 하지만 학술사의 관점에서 보면 『역경』과 서로 관련이 없는 오행, 천간, 지지, 사주와 명리학, 풍수 등의 원리와 쓰임, 이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이런 학문은 『역경』과는 다른 문화권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우리가 어렴풋이 『역경』 이후의 문화이거나 『역경』과 같은 것이라 여기는 것과는 달리 문화의 출발과 시기가 다르다고 본다. 예를 들어 오행 문화는 황하강 하류, 오늘날 중국 하북 지방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문화의 출발이 다른 것뿐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 오히려 역의 문화보다 더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천간과 지지, 사주 문화는 역학이나 오행 사상보다 더 연원이 길며 배경이 되는 학문적 바탕이 천문학임을 밝힌다.
저자는 이처럼 역학 및 역학과 밀접히 관련된 주변 학문의 뿌리가 고대 전통 천문학과 지질학, 지리학 등이지만 후세인이 운용만 할 수 있을 뿐 그렇게 된 원인을 모르고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우리가 띠를 말할 때 열두 가지 동물을 상징적으로 사용하는데 그것은 인도 문화에서 온 것이다. 또 동물의 음양을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는지도 우리가 그 이유를 탐구하지 않을 뿐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역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역경』을 관통하는 핵심 정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진보하라는 것이다. 인격을 수양하든 일을 처리하든 시대의 흐름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오늘날 『역경』을 활용하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서양식 과학 정신에 따라 비약적으로 축적되었으니 그 성과를 『역경』 연구에 도입해야 한다.
현대 학문의 세례를 받고 과학이 이미 고도로 발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고대 역학의 사상을 현대적 언어와 사고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먼저 없애야 한다. 미신이라거나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서양 고대 연금술사들은 금을 얻기 위해 값이 싼 금속이나 납, 은에서 금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짓이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노력은 19세에서 20세기 초 물질 변환을 발견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날의 시각이나 언어로 고대인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어리석을 일은 없다. 역학이나 그와 비슷한 것으로 취급되는 고대 문화들은 모두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는 인류 지혜의 산물이다. 다만 이를 현대에 어떻게 운용할지는 우리의 몫이다.